[이하영의 시네마 레터] M에게-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하영의 시네마 레터] M에게-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년 3월 15일 kpm21
In 저널

 

단 나흘간의 비밀연애가 한 사람의 온 인생일 수 있다는 걸 당신도 아시는지요.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건 이력서에 적힌 본적지, 졸업장과 자격증, 경력 같은 것이 아닐 겁니다. 그건 그의 열정이 드러나는 순간에 있고, 사랑을 간직한 방식에 있어요.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식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그 얘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유난히 가혹하지요. 자신의 도달한 수준, 그 아래에서 부모의 삶을 판단하려 하니까요. 그래서 프란체스카는 그토록 긴 편지를 남긴 것입니다. 세 권짜리 편지책을 다 읽고 나면, 어머니라는 존재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라고, 그녀는 믿었을 겁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이해하는 데에 세 권의 책이 필요하다니, 저는 여기서도 한기를 느낍니다. 피와 살을 나누어준 어머니, 그 육친의 당연한 친밀함이 서로를 얼마나 까마득한 몰이해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일순간에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도 분리될 수 없는 천륜의 인연마저도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두고 언어로 엄밀하게 객관화한 재구성이 필요하고, 그럴 때만이 우리는 서로의 진실을 더욱 뜨겁게 껴안고 자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식이 부모에게 이해받고자 할 때에도 마찬가지겠죠. 우리는 어차피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각자의 서사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뼈아픈 일일지라도 말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우리는 서로 마음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요. 3월 10일 아침에 키워드 검색어로 떠오른 ‘분홍색 헤어롤’을 두고 서로 다른 서사를 구성해내는, 그 속에서 촘촘하게 갈라지는 서로 다른 입장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는 그 격차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희열을 느낍니다. 지금 세상은 ‘통합’을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 우리는 더 섬세하게 쪼개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틈들이 더욱 촘촘하고 빽빽해지면 좋겠습니다. 거칠게 둘로 쪼개졌던 것은 억지로 꿰매어 붙이면 흔적이 남아 다시 갈라질 기준선을 만들지만, 촘촘하고 빽빽하게 들어찬 틈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오래도록 온전히 공존할 것입니다.

→ <기획회의> 436호에 게재된 [이하영의 시네마 레터 06]  「M에게」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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